아영과 하은의 대화록
둘은 블로그 서로이웃 사이다. 2~3년 전 아영이 하은에게 서로이웃 신청을 걸었고, 하은은 내심 기뻤다. 2022년 11월, 하은은 느슨하게 연결되고 싶은 사람과 대화록을 만드는 과제에 아영을 초대했다.
아영: peaceAyoung이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하은: Inspiration book이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17년째 운영하고 있다.
요즘엔 누구든 만나면 이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아영: 일적으로는 나름 부단히 열심히 지내려 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는 안타까운 소식들이 많이 들려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럴수록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던지며 기대어봅니다. 하은 님은 잘 지내고 계시나요?
하은: 제가 잘 지내고 있는 걸까요? 저는 요즘 매우매우 바쁩니다. 과제도 해야 하고 과제 외적으로도 할 게 많구요. 잠도 잘 못 잡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짬을 내보려고 노력은 하는데요. 예를 들면 보고 싶은 드라마를 정주행한다든지(잠 잘 시간은 줄었지만), 이번에 미술대학 학생회에서 진행한 행사에 참여한다든지(귀여운 키링 구경, 새로운 친구들에게 편지 받음) 하면서요. 그리고 같은 연유로 사회문화적디자인스튜디오 수업에서 ‘먹고 자고 움직이는’ 것이 과업인 학교를 만들고 있는데 관심 있는 분들은 언제든 놀러와주세요.
블로그를 처음 시작한 시기는 언제인가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아영: 꾸준히 시작하려고 한때가 2019년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필름 카메라 사진을 기록해두려고 시작했는데 인스타그램에 올리기에는 별거 아니고 트위터에 쓰기에는 너무 긴 사적인 내용들을 정말 소수의 친구 몇 명과 공유하려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은: 제가 지금의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2005년, 그러니까 제가 7살 때의 일입니다. 저보다 한 살 많았던 아버지 친구의 딸이 열을 내며 동물농장 게임을 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되어, 반드시 쥬니어네이버에 가입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만 6세에게 부모님 인증(만 14세 미만 가입자는 필수)이란 가혹한 것이었지만, 저는 어머니를 설득하는 것에 성공했나 봅니다. 당시 블로그는 쥬니어네이버의 부산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글은 전혀 쓰지 않은 채 마치 파니룸을 꾸미듯 블로그 스킨을 꾸미는 것에만 몰두했습니다. 제 블로그가 본연의 기능을 불사지르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 후의 일입니다.
블로그 닉네임은 어떻게 정하게 되셨나요?
아영: 인스타 아이디에 @piece가 들어가요. 인스타에는 저의 한 부분(piece)만 보여줘서요. 블로그도 똑같이 할까 하다가 비슷한 발음의 peace가 떠올랐고 거기에 이름을 더해 만들었습니다.
하은: 도시를 사랑합니다. 그 근원은 아마도 도시의 미학으로서의 건축과, 도시의 내용으로서의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더욱 상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면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의 옥상 혹은 뒷골목으로 따라오시면 됩니다.
프로필 사진은 어떤 의미인가요?
아영: 서점 더 북 소사이어티 벽 면에 붙어있던 동그란 자석이에요. 지면이나 웹에 인터뷰를 읽으면 인터뷰이나 인터뷰어가 웃으면서 말한 부분에 (웃음)이라고 표기하잖아요? 저는 그게 너무 좋아요. 그 사람이 어떻게 웃었을까 상상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뭔가 (웃음)을 표기해준게 친절하고 따듯하게 느껴져서요. 이런 저런 이유들을 합쳐서 서이웃 받아주시는 분의 경계심을 풀어드리고 싶어서 골랐습니다.(웃음)
하은: 구체적인 사진을 선택하는 것에 당혹스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1991 S/S 블루' 컬러로 프로필을 조성해보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으신가요?(이 소개는 현재의 자신에 대한 설명이 될 수도, 미래의 자신에 대한 설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영: 너무 어려워서 못 쓰겠어요. 자기소개는 정말 어렵네요.
하은: 제 자신에 대한 소개는 이곳의 한 구석에 미뤄두겠습니다. 또한, 이곳에서 하라는 소개는 안 하고 미완성의 자기소개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 9월 초의 한 장면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자기소개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요?
서로의 블로그를 알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혹시 기억이 나신다면 짧게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아영: 정확히 기억합니다! 영화 <메기>의 수색교를 가보려고 검색했다가 하은 님의 <메기를 찾아서>라는 포스트를 읽었어요. 글이 담담하고 평화로워서 좋았습니다.(지금도 이 생각은 같아요.) 다른 포스트들도 좋아서 서로이웃 신청을 하려 했는데 뭔가 지인분들끼리만 공유하는 블로그인가 싶어서 하루 정도 고민하다가 서로이웃 신청했어요.
추신.
저는 아직 수색교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하은: 아영 님께서 먼저 서로이웃 신청을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나 몇몇 친구들이 보는 작은 블로그를 운영 중이기 때문에 보통 서로이웃 신청이 들어오면 이상한 스팸 계정일 때가 많은데, 도무지 스팸 계정 같지 않은 분께 이웃 신청이 와서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블로그를 방문해보니 오히려 반짝이는 사진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아영 님의 글과 사진을 계속 보고 싶어서 서로이웃 신청을 수락했습니다.
올려주시는 사진들 잘 보고 있어요. 주로 찍는, 혹은 좋아하는 피사체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영: 오래돼서 모든 게 하나처럼 보이는 것들 혹은 가장 자연스러운 걸 주로 찍는 것 같아요. 찍었던 필름 사진 중에는 친구 둘이 비 오는 날 우산을 같이 쓰며 오던 사진을 제일 애정해요.
하은: 공간(건축물 포함)을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존재의 흔적인지 뭔지...버려진 음료수 캔 같은 것도 찍어댑니다.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도 찍습니다.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노래는 무엇인가요?
아영: 아는 언니가 백예린을 좋아해서 최근에 쭉 듣다가 You’re So Lonely Now, So You Need Me Back By Your Side Again 을 제일 많이 들어요. “넌 지금 외로워서 내가 다시 네 옆에 와주길 원하는거야” 단호하고 직설적인 가사가 매력적이에요.
하은: 최근엔 Fujii Kaze, Ego Apartment, Kirinji, 혹은 FKJ, Mac Demarco, Men I Trust, Greentea Peng, Christelle Bofale의 노래를 자주 듣고 있습니다. 겨울이니 저를 따라 Mac Demarco의 Chamber of Reflection을 들어보는 건 어떠신지요.
어려운 질문이지만...좋아하는 영화를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하나만 소개해주셔도 좋고, 여러 가지를 소개해주셔도 좋습니다.
아영: 복수에 관한 영화를 좋아하는데 국내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와 <복수는 나의 것>을 좋아해요. 근데 추천드리고 싶은 영화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킬링 디어>입니다.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자신의 아버지를 의료 사고로 죽인 의사 스티븐에게 마틴이 “말”로 그의 가족에게 저주를 내리면서 이야기가 시작해요.
마틴이 스티븐의 가족에게 내린 저주는 3단계에 걸쳐지는데 첫 번째는 하반신 마비, 두 번째는 눈에서 피가 나고 세 번째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가족 중(아내, 딸, 아들) 한 명을 죽이지 않으면 모두가 죽어요. 마틴은 스티븐을 죽여서 복수하기 보다 스티븐이 자신과 똑같이 잃고 똑같이 고통받길 원하는 거죠. 결국 스티븐은 가족들 중 한 명을 죽이고 마틴의 저주에서 해방됩니다. 그리고 마틴과 스티븐, 스티븐의 남은 가족들이 식당에서 마주치면서 이 영화가 끝나요.
이 마지막 장면의 결말과 배우들의 표정, bgm이 모호한 상태로 끝나서 정말 좋아합니다. 마틴이 자신의 복수를 맞이한 스티븐의 가족들을 보며 만족해 보이기도 하고 덤덤하고 공허해 보이기도 해요. 스티븐과 가족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초연해 보이는데 어쩐지 다시 복수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 것 같기도 해요.
포스터와 영상미도 너무 좋아하지만 스토리도 현실과 밀접해서 고민하게 되는 영화라 좋아합니다.
하은: <거북이는 의의로 빨리 헤엄친다>라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일상에서 비일상을 찾아내는 것만큼 현대인에게 필요한 덕목이 또 있을까요.
이번 겨울은 어떻게 보내고 싶으신가요?
아영: 일단 작업하고 있는 책들을 최선을 다해 무사히 끝내고 싶은 게 제일 큰데 너무 바빠서 적당히 한숨 돌리고 싶기도 해요.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따뜻하고 맛있는 뱅쇼와 케이크를 먹고 싶습니다.
하은: 이미 생성된, 그리고 따라야 하는 계획과 별개로 일본에 가고 싶습니다. 도쿄의 정신 없는 밤거리를 걷고 싶어요. 맑은 겨울 낮엔 신주쿠 역에서 기차를 타고 주변 도시로 떠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