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하은의 대화록

하은: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한다. 하은은 2019년 12월, 처음 나무의 영화를 봤다. 2022년 11월, 하은은 느슨하게 연결되고 싶은 사람과 대화록을 만드는 과제에 나무를 초대했다.

나무: 영상을 만들기도 하지만, 이것저것 다 잘하는 사람.

하은: 요즘엔 누구든 만나면 이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나무: 잘 지낸다는 말 보다 바쁘게 지낸다는 말에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은: 배나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셨나요? (김뜻돌 님의 <삐뽀삐뽀>라는 노래를 정말 좋아하는데, 크레딧에 ‘배나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 영상도 나무 님께서 맡으셨던 걸까요?)

나무: 배나무라는 이름이 처음에 어떻게 생긴건지 저도 궁금한데 기억나지 않습니다. ‘원조할머니집’이라고 적혀있는 가게가 여러 개 있는 것 처럼 제 머리속에 이름과 관련된 모든 기억들이 본인이 원조라고 우기고 있어서 뭐가 원조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나무처럼 능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언젠가 했었던 것도 같아요. (네 그 뮤직비디오는 제가 촬영/편집으로 참여했습니다. 콘티도 없이 하루종일 6mm 캠코더를 들고 여기저기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하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으신가요? (이 소개는 현재의 자신에 대한 설명이 될 수도, 미래의 자신에 대한 설명이 될 수도, 혹은 둘 모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무: 음...이것저것 다 잘하고 있습니다. 라고 소개를 하는 편입니다.

하은: 나무 님이 감독하신 영화를 좋아합니다. 지금까지 두 편을 봤는데, 하나는 제가 2019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일했을 때 봤던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이고, 하나는 퍼플레이에서 찾아봤던 <트러스트폴>입니다. 둘 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영화들이라 영화에 대한 짧은 질문도 드리고 싶어요.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을 보고 나서 기억을 기록하는 방법, 기억과 기록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님들은 문자 대신 기릉지를 통해 기억을 기록했고, 나무 님께서는 할머님들의 기록되지 않은 기억을 영상으로 남겼습니다. 나무 님께 카메라를 통한 기록은 어떤 의미인가요?

나무: 제가 만든 영화를 좋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트러스트폴>까지 봐주셨다니 공동연출한 이소정 감독님께도 이 소식을 전달드리겠습니다.) 영상은 제가 가장 잘 구사할 수 있는 언어 같은 것인데요. 같은 이유로 카메라를 통한 기록은 제가 가장 정확하게 남길 수 있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 부터 말로 표현하는 게 어려웠고, 그보다는 글이 좀 더 쉬웠고, 카메라를 처음 들었을 때 영상언어가 제 모국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은: <트러스트 폴>을 보고 나서 큰 감명을 받은 나머지 짧은 글을 하나 썼습니다… (영화를 소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리고 이별 영화를 실험 영화의 형식으로 만들었을 때의 흥미로운 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나무: 만들었을 당시에는 솔직히 이 영화가 실험영화라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영화를 잘 보지 않기도 했고(여전히 영화 보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화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은 상태도 아니었고(이 또한 여전합니다…)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고 해서 한 작업인데 나중에 실험영화라고 이름이 붙여져서 신기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소장하실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은: 어려운 질문이지만…좋아하는 영화를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하나만 소개해주셔도 좋고, 여러 가지를 소개해주셔도 좋습니다.

나무: 최근에는 <헤어질 결심>을 재밌게 봤습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 <디아워스> 도 재밌게 봤고요. 지독하다고 느껴지는 영화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하은: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노래는 무엇인가요?

나무: 최근 집에 카세트/CD플레이어를 샀는데요. 가수 김현철님의 앨범 테이프를 자주 듣고 있습니다. Mort garson 앨범 테이프도 자주 듣습니다.

하은: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가 있으신가요? 혹은 영상이 아닌 다른 무엇 (여기서의 ‘무엇’은 요리, 사진집 등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에 대해 말씀해주셔도 좋습니다.

나무: 원래 설치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12월에 설치 전시를 하게 되어서 다음 목표는 이제 슬슬 세워봐야 합니다.

하은: 이번 겨울은 어떻게 보내고 싶으신가요?

나무: 겨울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조용하게 보내고 싶습니다.

하은: 반대로 저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편하게 남겨주세요. (없다면 굳이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나무: 최근 가장 억울했던 경험은 무엇이었나요?

하은: 한국어의 '억울하다'와 직역되는 단어가 없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단순히 언어가 다듬어져 온 과정이 달라서일 수도 있지만...유독 제가 사는 곳에서 억울하다는 단어가 자주 쓰이는 것이라면, 제가 사는 곳이 억울하다는 감정을 자주 촉발시키는 곳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억울한 일인 것 같습니다.

최근 가장 억울했던 경험은 아마 너무 바빠서 잠도 제대로 못 잤을 때인 것 같습니다. 따지고 보면 제가 너무 많은 수업을 듣고, 수업 외에도 여러 일을 해서 그런 것이니 제 탓일텐데, 왜 억울한 감정이 드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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