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사이트란 무엇인가

이미 충분히 배웠음에도 학생들이 웹사이트를 어떻게 만드는지 되묻는 것은 오늘날 웹사이트를 만들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마찰과 사회적 압박을 암시한다.(p.46)

기술적 마찰과 사회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면 높은 확률로 더 많은 코딩 강좌, 혹은 유튜브 광고에서 본 웹사이트 빌더로 눈을 돌릴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선 ‘무엇’을 만들지보단 ‘어떻게’ 만들지에 더욱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초의 웹사이트를 방문하고, HTML이 가진 에너지를 이해하는 것은 일견 해방적이기까지 하다. HTML은 필연적으로 ‘무엇’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자신이 갈망하는 ‘무엇’으로 침잠하는 시간이 꽤나 명상적이며, 동시에 산뜻하게 느껴진다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자신이 누구고,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기록하려는 사람일수록 웹사이트가 필요하다.(p.46)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분연히 떠오르는 순간이다. 빠르게 웹을 구축하기 위해 Cargo나 Squarespace를 사용하는 것은 얼마 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여러 가능성을 제한한다. 이들은 심지어 템플릿 없는 글쓰기가 미련한 짓으로 보이게끔 조장하기도 한다.(특히 Squarespace는 광고를 너무 많이 한다. 남들에게 쫓기듯 웹을 만들 필요는 없다.) 아무리 템플릿을 ‘커스텀’할 수 있다고 해도 비어있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자유로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자존하는 웹을 만들어 보자.(원한다면)

웹사이트는 놀랍고, 기억에 남고, 기념비적이고, 진정하고, 충격적이고, 예측할 수 없고, 지루하고, 기괴하고, 조용하고, 미묘하고, 놀라울 수 있다.(p.47)

또한, 웹사이트는 즐겁고, 웃기며, 어이가 없다. Neocities에 올라온 웹사이트를 구경하는 것만으로 즐겁고, 웃기며, 어이가 없는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사람은 작가이자 건축가가 된다.(p.47)

그렇다. 웹사이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코딩을 해야하고, 코딩은 근본적으로 글쓰기이다. 컴퓨터가 내 글을 읽고 즐거워해주길 바라며 겸허히 임하자. 따라서 웹사이트를 만드는 사람은 작가다. 또한, 웹사이트를 만드는 사람은 건축가이다. 최근 NFT나 메타버스와 함께 디지털 부동산 개념이 존재를 과시하고 있지만 이전에도 웹은 이미 공간이었다. 덕분에 나 역시 ‘Neocities’라는 신도시에 그럴듯한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참 감사한 일이다.

웹사이트는 왜 필요할까

웹이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노드(node)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되새긴다면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웹을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p.47)

웹과 웹사이트를 목록이라고 본다면, 목록 안에는 수많은 항목이 있다. 그리고 항목과 항목 사이에는 틈이, 작지만 분명한 공간이 있다. 하나의 항목이 그 틈을 이용해 진동을 시도하면 다른 항목들에도 점차 진동이, 멀리까지 전달될 것이다. 그것이 항목이 가진 전복 가능성이다.

웹사이트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방: 하이퍼링크를 통해 방 사이를 오고갈 문을 만들 수도 있다.
선반: 목적을 떠나 물건은 작을수록 좋다.
식물: 식물은 천천히 스스로 자란다.
정원: 마음속에 정원을 만든다면 그곳에서 생각을 가꿀 수 있다.
웅덩이: 일시적으로 빗물이 모인 웅덩이는 폭풍우가 지나간 뒤 생긴다.
바닷속으로 끝없이 가라앉는 바위: 다행히 바위는 널려 있다.(p.49~52)

웹사이트는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완벽하지는” 않은 하나의 은유를 덧붙이자면, 웹사이트는 테이블이 될 수 있다. 혼자 테이블에 앉아있다면 대체로 맥북으로 일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창 밖을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겠지만, 또 한 명의 사람이 있다면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좀 앉아보실래요?

웹은 우리가 만든다

얼마 전 웹은 스물아홉 살이 됐다.(p.53)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으니 지금은 삼십대 초반의 나이겠다. 곧바로 동년배라고 칭하긴 어려울 수도 있겠으나 분명 함께 공유해 온 시대의 기억이 있다. 오래도록 종종 만나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의 마무리가 으레 그렇듯, “우리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자.”